"100% 손해 배상하겠습니다."
SK텔레콤이 유심(USIM)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민 앞에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듣기엔 그럴듯하다. 말만 들으면 모든 피해자에게 공정하고 신속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100% 배상하겠다’는 선언은 있었지만, 피해를 어떻게 산정하고 누가 판단하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8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 황정아 의원은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을 향해 날카롭게 질의했다. “그 100% 배상이라는 말,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겠다는 것입니까?” 산정 방식도, 판단 주체도, 구체적인 절차도 없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은 오직 “검토 중입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태의 본질은 ‘신뢰의 상실’이다. 유심 해킹 사고 그 자체도 심각하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사건 이후의 대응이다. 사과는 있었지만 진정성은 없었다. 구체적인 대책도 없었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SK텔레콤은 ‘고객 신뢰 회복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그조차 아직 계획 단계에 머물고 있다.
심지어, SKT의 보안 체계에 실망해 타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선택한 고객들에게도 ‘위약금’을 청구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통신사 보안에 대한 불신으로 이탈을 결정한 상황에서, 고객 책임으로 위약금을 물리는 행태는 그야말로 무너진 신뢰 속에서도 이익을 챙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의 실책으로 인한 고객 이탈인데, 그 책임을 오히려 고객에게 전가하는 격이다. 국회에서 '위약금 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SKT는 위약금 면제로 인한 손해액만 계산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만이 아니다. 유심 부족 사태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SK텔레콤 대리점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대리점 점주들은 본사로부터 충분한 재고 지원도, 보상 계획도 받지 못한 채 고객의 항의를 정면으로 감당하고 있다. SKT는 “보상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기술 사고의 문제가 아니다. 독점적 지위를 가진 통신 기업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느냐, 나아가 그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다. 그리고 SK텔레콤은 지금 이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다.
정보통신 서비스는 이제 공공재에 가깝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커졌고, 한 번의 사고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도 크다. 그렇기에 위기 이후의 대응이 곧 기업의 진정한 실력이고, 그 기업이 존속할 자격이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SK텔레콤은 이제 ‘말’이 아니라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피해 산정 기준, 배상 절차, 위약금 감면 여부를 명확히 제시하고 실질적인 조치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100% 배상’이라는 말은 공허한 홍보 문구로만 남을 것이다.